[TSN칼럼] 허세와 허영을 버리고 실리를 찾아야
우리는 이성을 가진 사람이고, 사람이란 가슴에 사랑을 품고 자신의 양심을 불태워 사회속에 공동체를 형성하는 그런 존재이다. 이런 마음이 없다면 필경 사람이 아니라 짐승도 아니며 악마라 한다. 짐승도 자기 새끼를 저 정인이 양부모 처럼 학대하고 죽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짐승보다 못한 사람의 탈을 쓴 사람을 보면서 참으로 악하고 독한 사람들이 있구나 도대체 어디까지 악이 독기를 품고 희대의 사건들을 만들어낼까….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만들지 않기 위해 학문을 만들어 냈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하고자 인문학도 철학도,종교도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본다.
허나 아무리 좋은 제도와 도구가 있을지라도 사악한 마음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죄악으로 연결되고 그 죄악이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와 저런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조금 지나면 또 잊혀지며 이보다도 더 악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이러한 일 들이 왜 이 나라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을까?
인간의 존재가치를 잃어버린 결과다. 태초에 사람을 이 땅에 창조한 목적은 경서에 보면 모두가 한 마음으로 지구촌에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고자 사람을 창조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속에 선한 마음을 넣기 전에 인간은 짐승과 같은 이성이 없는 동물처럼 살아왔으나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피조물 중에 오직 사람에게만 착하고 선한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선이 빠진 그 자리에 악인 욕심이 가득하니 사람으로서의 기능이 상실된 짐승보다 못한 악귀의 화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마가 낀 사람, 사람이기를 포기한 그 마음을 가진 자는 그 속에 이성이 사라지고 오직 악의 뿌리라 했던 돈이라는 욕심이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어 인성도 지성도 사라져버린 마귀의 화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의가 사라진 사회일수록 이러한 일들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인내가 짧아지고 인성이 없어지며 시기와 질투가 온 세상을 덮는 순간 우리는 이런 마귀의 정신속에서 자아(自我)를 잃어버리고 마귀신의 노예가 되어 시키는 대로 행하는 것이다. 싸가지(인의예지) 없는 일들이 부지기수로 사회에 만연되어 버린다.
바로 지도자의 정의가 사라지고 탕평의 룰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 욕심이 자리하는 세상이 와 버린다. 이것은 모두에게 불행이며 나라도 사회도 나아가 지구촌도 혼란과 불공평에 의한 각자위심의 세상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각자도생으로 가기에 분리와 이간이 춤을 추며 정의는 목마르고 이기는 하늘을 찌른다. 제2 제3의 정인이가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사회로 갈 수 밖에 없다.
정신혁명이 필요하며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는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지도자가 출현해야만 한다. 무엇을 위해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가? 바로 정의와 사랑과 평화가 아니던가? 정인이가 불쌍하고 정인이에게 미안 하다면 오늘 이 시간부터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누구인가? 인간의 존재가치를 다시금 원초에서부터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격분해도 각자위심(各自爲心) 바로 나만을 생각하는 욕심 속으로 돌아가기에 지금 아무리 울분을 토해내고 눈물을 흘려보아도 참된 행함이 없이는 정인이는 또다시 눈물을 흘릴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내 자식 내가정부터 바르게 그리고 나를 돌아보자 그래야 한다.
해서 예수님은 이런 악함을 없애고 각자위심으로 살아가는 악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지지 아니했던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라고 말이다. 무엇으로? 바로 우리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해주신 아버지의 마음으로 그 마음이 바로 사랑이 아니던가? 이제는 우리가 욕심을 버리고 모두가 함께 마음을 모아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사람을 만들어가야만 한다. 이것이 부활이 아니던가? 우리의 마음 속에도 바른 정신을 차리지 아니하면 악인 욕심이 순식간에 들어온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을 통하여 알았으면 싶다. 서로 저주하고 핍박하지 말고 사랑을 뿜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임을 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