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 기행3] 만병 통치약 독락당의 조각자 나무
▲ 가시 면류관 같은 가시층이 촘촘히 가지와 줄기에 박혀 있는 독특한 모습>
이언적(1491~1553)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희재집”을 비롯한 수 많은 저서를 남긴 학자이다. 기(氣) 보다 이(理)를 중시하는 그의 사상은 퇴계 이황에게 전승돼 조선 성리학의 한 맥을 이루게 된다. 전형적인 조선 사대부인 그와 깊은 인연을 맺은 나무가 있다.
경주 에서 안강읍에 거의 다다를 즈음 옥산서원 입구를 만난다. 옥산서원은 이언적을 모신 서원이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중종27년(1532) 동료인 김안로의 재임용을 반대하다가 쫒겨나 잠시 낙향 했을 때 이언적이 지은 독락당( 獨樂堂)이 있다.
그는 이곳에 은거하면서 건물 뒤뜰에다 조각자나무라는 특수한 나무 몇 그루를 심었다. 그 중에서 한 그루가 독락당 뒷편 최근 새로 지어진 어서각 앞에서 490년 풍상을 이겨낸 채 서 있다.
▲ 현재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 뒤편 독락당에 자리한 조각자나무 모습>
나무는 밑동부터 썩어버려 우레탄 수지를 덮어씌우고, 겨우 생명을 부지한채 줄기 셋을 간신히 비끄러메고 있다. 키15.5m에 뿌리목 둘레5.5m.가지 펼침이 남북동서방향으로 17m에 이른다.
이 조각자 나무는 중국서 자라는 수입산 나무다. 그런데 이 나무를 심은 것은 거의 만병통치약이라 할 만큼 널리 쓰이는 약 나무이기 때문이다. 언적의 이력을 보면 50대 초반에 몸이 아파 관직을 여러 번 사양한 적이 있고 벼슬살이 동안에도 병든 노모 봉양을 이유로 자주 사직을 하거나 외직으로 요청을 많이 하셨다 한다.
낙향 할때는 41살의 장년이었지만 약으로 널리 쓰이는 조각자나무를 찾아 심을 만큼 건강에 신경 썼던 것 같다.
조각자나무를 어디서 구해다 심었는지는 확실치 않다.그의 경력에는 중국에 다녀온 적은 없으니 사신을 통해 구해올 수 도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민간에 심어진 것을 옮겨 심은 지도 모른다.
조각자나무는 콩과 식물이며 잎사귀는 얼핏 보아 아카시나무잎 생기듯 했다.나무 껍질은 아름드리가 되어도 매끄러우며 보는 느낌이 평온하다. 그러나 줄기는 아무데서나 갑자기 솟아오른 가시를 만나면서 그 지독한 험상 굿음에 크게 놀란다. 한번 내민 것으로 성이 차지 않는지 두번 세번 가지치기를 한다. 이 가시를 조각자(皁角刺) 라 하는데 , 옛 사람들의 명약이었다.
동의보감에 보면 부스럼을 터지게 하며 문등병에도 좋은 약이라 소개되어 있다.
▲ 독락당 과 아래로 흐르는 냉천의 아름다운 모습
이언적은 독락당에서 약나무를 심어 건강을 돌보면서 유유자적한 만년의 꿈을 키웠을 것이다.그러나 불행히도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류되어 57세때 북한 자강도에 강제 유배되고 만다.그리고 강계땅에서 6년을 더 살고 꿈에 그리던 독락당도, 조각자 나무도 영영 만나지 못한채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만다.
가까운곳에 있으니 한번쯤 찾아보고 조각자나무의 독특한 멋과 이런 나무들을 보면서 우리의 삶에 새로운 힘을 얻는 독자들이 되어보길 고대하면서 조각자 나무 기행을 마친다.